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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주요도시]   

 

 

이베리아 반도의 중앙부에 위치하며스페인의 수도.

해발 650미터에 위치하며, 인구는 약 480만 명이며 대륙성 기후로 건조하고 한난의 차가 심하다.
마드리드의 역사는 스페인의 다른 유적 도시에 비하면 역사가 그리 긴 편은 아니다. 이슬람이 지배하던 9세기 후반경, manzanares강 유역에 성채를 쌓은 것이 기원이다.


15세기말 스페인이 통일되면서, 합스부르그왕가의 통치가 시작되었는데, 스페인 대제국의 절정기에 있었던 펠리페 2세에 의해 1561년에 수도를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옮겼다.


천도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있으나 마드리드는 이베리아 반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당시 세워질 예정이었던 엘에스코르알 왕궁으로부터 가까이 위치해있기 때문이다. 왕궁이 세워지자 귀족, 관리, 예술가들이 모여들며 도시가 비약적으로 커졌다. 18세기 왕위계승 전쟁결과, 독일의 합스부르그가에 이어 프랑스의 부르봉왕가의 통치가 시작되고, 수도 마드리드도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그 모습이 변하게된다. 18세기 후반 까를로스 3세의 해에 수많은 건축물들이 지어지고, 따라서 도시는 더욱 커져 현재의 마드리드의 면모를 갖추게되었다.

세르반테스는 바르셀로나를 '유럽의 꽃'이라고 불렀을 만큼,스페인적인 정열 속에 프랑스적인 분위기를 잘 조화되어있다.

많은 미술관이 있으며 라세보 극장은 유럽에서 스칼라 좌에 이어 그 규모를 자랑하는 극장. 이 곳은 헤라클레스에 의해 세위지고 페니키아에 의해 확장되어 로마에 의해 다듬어지고 서고트에 의해 빛났다고 일컬어진다.
그만큼 색다른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곳이란 뜻. 스페인 제2의 도시로 인구 2백50만을 헤아리며, 띠비다보(Tibidabo)와 몬쥬익(Montjuich)이라는 두개의 높은 언덕사이에 있으며 중세시대 그대로 보존한 구시가지와 현대적인 빌딩이 늘어선 신시가지로 나눠져 있다.


인구 약 74만 7천(1996).
역사적으로는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고트, 아랍 등의 지배를 받아 왔으며, 1094년에 국민적 영웅 엘시드가 정복하였다. 그러나 그가 죽자 다시 엘아랍의 발렌시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으며, 1238년에야 아라곤왕(王)이 탈환하였다.

19세기에는 프랑스의 지배와 이에 대한 저항운동, 시민전쟁, 때로는 공화파의 철저한 저항으로 파괴가 심했으나, 성당을 비롯하여 역사적 건조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 현재는 상공업뿐만 아니라 정치, 군사, 종교, 교육, 문화의 중심지이며 후스티시아궁전, 예술 및 도자기박물관, 식물원, 고생물 박물관 등이 있다. 또한 기후가 쾌적하여 관광객이 찾아든다.

 

옛날 이슬람교도와 그리스도 교도의 공방전이 무수히 벌어졌던 곳.
구아달끼비르 강을 끼고있는 세비야는 역사적인 도시로서 페니키아인들 시대부터 문명이 있었던 도시로 페니키아인들은 금을 찾아 구아달끼비르 강을 거슬러 올라와 세비야에 식민도시를 건설하였다. 나무와 흙으로 도시를 둘러가며 성벽을 쌓았다. 그 뒤를 이어 카르타고 인들이 기원 5세기경 세비야의 주인이 되었다.

로마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오면서 세비야는 이베리아 반도의 주요한 로마의 거점도시 중의 하나가 되었다. 시저도 두 번에 걸쳐 세비야를 방문했으며 폼페이우스와 대결했을 때 세비야 거주 로마인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로마인의 뒤를 이어 비시고도 족이 한때 세비야의 주인이 되었으며 711년 이슬람 인들의 이베리아 진주 이후 세비야는 1248년 다시 기독교인들에 의해 탈환될 때까지 약 500년 이상의 세월을 아랍인의 수중에 놓이게 되었다. 스페인에 아랍인들이 처음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비시고도 왕국의 내분 때문이었다. 처음엔 용병으로 건너왔으나 곧 비시고도 족을 몰아내고 반도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콜롬부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세비야는 1500-1600년대 중남미와의 교역의 중심지로써 황금기를 누렸으며, 중남미의 막대한 금과 은이 세비야를 통해 들어와 한때 '황금의 도시'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한편 1646년에는 세비야를 휩쓸었던 페스트로 전체인구 30만 명중 20만 명이 죽는 참사를 겪기도 하였다.
 


카스티야지방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중의 하나로 구아다라마 산맥의 해발 1000미터에 자리잡고 있다.

인구 약 55,000 명정도가 살고 있는 곳으로 이 숫자는 16세기경부터 크게 줄거나 늘지 않고 있다. 세고비아라는 도시의이름은 옛 서고트족의 침입당시 'SIEG(시에그)'라는 낱말에서 유래, '승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한다. 주위에 산업시설, 공장지대가 거의 없기 때문에 공기가 특히 신선하고 맑은 것이기도하다. 자연경치가 아름다워 각 계절마다 가지는 독특한 분위기가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을 더욱 매료시킨다.

특히 이곳은 옛 로마인들이 건설한 약 2000년의 역사를 가진 ACUEDUCTO(로마 수로교)와 모든 세계 어린이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주었던 디즈니랜드의 백설공주에서 나오는 성의 모델이되었던 성채(알카사르)도 남아있다.